고개 숙인 쿠만 감독, 홍명보 전 감독과 대비되는 책임감…“평생 잊지 않을 것”
작성자 정보
- 커뮤관리자 작성
- 작성일
컨텐츠 정보
- 8 조회
- 목록
본문

뻣뻣하게 고개를 세운 홍명보 전 감독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다. 로날드 쿠만 감독이 고개를 숙인 채 네덜란드 축구대표팀의 지휘봉을 내려놓았다. 월드컵 32강 탈락이라는 충격적인 성적표를 받아든 지 하루 만에 스스로 사임 의사를 공식화했다.
네덜란드축구협회(KNVB)는 1일(한국시간) 쿠만 감독이 대표팀 감독직에서 물러나기로 결정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쿠만 감독 역시 개인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어젯밤 네덜란드 대표팀 감독으로서의 여정을 마무리하기로 했다”며 작별 인사를 전했다.


네덜란드는 2026 국제축구연맹(FIFA) 북중미 월드컵에서 예상보다 훨씬 일찍 짐을 쌌다. 지난 30일 멕시코 몬테레이 스타디움에서 벌어진 모로코와의 32강전에서 연장까지 1-1로 승부를 가리지 못한 끝에 승부차기에서 2-3으로 무릎을 꿇었다. 우승 후보까지는 아니었지만 적어도 8강 이상을 바라볼 수 있는 전력이라는 평가를 받았던 네덜란드로서는 뼈아픈 결과였다.
조별리그까지만 해도 흐름은 나쁘지 않았다. 일본과의 첫 경기에서 두 차례 리드를 지키지 못하며 2-2로 비겼지만, 이후 스웨덴을 5-1로 대파했고 튀니지도 3-1로 제압했다. 조별리그 3경기에서 10골을 폭발시키며 F조 1위로 토너먼트에 안착했다. ‘죽음의 조’에서 수위를 차지했기에 16강에서도 상승세가 이어질 것으로 기대됐다.
하지만 32강 첫판에서 모든 계획이 무너졌다. 쿠만 감독은 모로코전에서 조별리그 동안 가동했던 4백 대신 5백을 꺼내 들었다. 수비 숫자를 늘려 안정감을 추구한 승부수였으나, 결과적으로 네덜란드 특유의 공격 색깔을 상실했다는 지적을 면치 못했다. 선제골을 넣고도 경기 주도권을 확실히 장악하지 못했고, 수비적으로 내려선 틈을 타 동점골을 허용했다. 결국 승부차기에서 고개를 떨구며 네덜란드의 월드컵은 32강에서 막을 내렸다.
전술 논란도 거셌다. 쿠만 감독은 경기 후 5백 전술 실패와 관련한 질문에 “월드컵 전부터 네덜란드 전역에서 3백을 써야 한다는 목소리가 많았다. 그래서 그렇게 했더니 이제 와서 또 그걸로 비판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다시 같은 상황이 온다 해도 나는 똑같은 선택을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발언은 네덜란드 현지 여론을 더욱 자극했다. 패배 책임론과 함께 쿠만 감독에 대한 비난이 거세졌다. 폭스 스포츠 해설위원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도 “오늘 쿠만 감독은 마치 이탈리아 감독처럼 지지 않기 위한 축구를 했다. 이번 패배는 쿠만 감독의 책임이다. 나는 오늘 네덜란드다운 모습을 전혀 볼 수 없었다. 네덜란드의 정체성이 아닌 방식으로 패배했다는 점이 더욱 분노를 산다”고 맹비난했다.
결국 수순은 사퇴로 이어졌다. 쿠만 감독은 입장문을 내고 “대표팀에서의 시간이 이런 식으로 끝나게 돼 더욱 가슴이 아프다. 우리 모두 이번 월드컵에서 역사를 쓰는 꿈을 꿨지만, 그 꿈은 이루지 못했다. 누구보다 이 결과에 가장 실망한 사람은 나 자신”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대표팀 감독으로서 그 책임은 내 몫이다. 나는 항상 그 책임을 의식하며 일해왔고, 앞으로도 평생 그 책임감을 잊지 않을 것”이라며 월드컵 실패에 대한 무거운 짐을 내려놓았다.
다만 쿠만 감독의 대표팀 이별이 오로지 성적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는 가족과 건강 문제를 함께 언급하며 개인적 사정도 털어놓았다. “지난 몇 년은 축구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는 사실을 다시금 일깨워줬다. 축구는 내 모든 것이었지만, 건강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가치”라고 말했다.
또 “사랑하는 사람이 힘겨운 싸움을 이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인생을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며 “아내 바르티나는 자신의 투병 중에도 내가 대표팀 감독으로서 마지막까지 임무를 완수할 수 있도록 매일 응원해줬다. 그것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강인함이었고, 나는 그에게 평생 갚을 수 없을 만큼 감사한 마음을 품고 있다”고 덧붙였다.

영국 BBC 등 외신에 따르면 쿠만 감독의 부인 바르티나는 최근 유방암 진단을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쿠만 감독이 대표팀 지휘봉을 내려놓고 가족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려는 결정에는 이러한 개인적 배경도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쿠만 감독은 “앞으로는 아내와 자녀, 손주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다. 지금이 물러날 적기라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물론 대표팀 감독 생활을 월드컵 우승으로 마무리하고 싶었다. 그 꿈은 끝내 이루지 못했지만, 무엇보다 내 마음을 채우는 것은 자부심”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축구가 내게 안겨준 모든 것, 그 과정에서 만난 사람들, 그리고 평생 가장 사랑했던 일을 직업으로 삼을 수 있었다는 사실에 큰 자부심을 느낀다. 그간 보내주신 신뢰와 비판, 응원과 실망, 성공과 실패, 그 모든 순간에 진심으로 감사드린다”는 마지막 인사를 남겼다.
KNVB도 쿠만 감독의 결정을 존중하는 뜻을 전했다. 나이절 더 용 KNVB 엘리트축구 디렉터는 “쿠만 감독은 지난 몇 년 동안 대표팀을 위해 변함없는 책임감과 헌신을 보여줬다. 네덜란드 축구에 기여한 모든 것에 감사드린다”고 평가했다.
동시에 차기 감독 선임 작업에도 착수했다. 더 용 디렉터는 “이번 월드컵 목표는 최소 준결승 진출이었고 궁극적으론 우승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그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며 “월드컵 종료 후 예정됐던 평가 절차를 진행 중이며, 공석이 된 대표팀 감독직에 대한 논의도 함께 시작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어 “9월 UEFA 네이션스리그 개막이 다가오고 있어 일정상 서두르긴 해야 하지만, 가장 적합한 인물을 선임하기 위해 충분히 신중한 검토를 이어갈 방침”이라고 설명했다.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을 지휘했던 홍명보 전 감독과는 전혀 다른 행보였다. 홍 전 감독은 조별리그 탈락 직후 2분도 채 안 되는 짧은 사퇴문을 낭독한 뒤 자리에서 물러났으나, 사과의 진정성이 부족했다는 비판을 피하지 못했다. 이후에도 그의 언행이 계속해서 도마에 오르면서 대중의 뭇매를 맞고 있다.
반면 쿠만 감독은 고개를 숙인 채 사령탑에서 내려왔다. 그는 네덜란드를 대표하는 전설적인 선수 출신으로, 선수 시절 A매치 78경기에 출전했고 1988년 유럽축구선수권대회 우승 멤버로 활약했다. 지도자로서도 두 차례 네덜란드 대표팀을 맡았다. 2018년 첫 부임 당시 침체됐던 팀을 다시 경쟁력 있는 집단으로 탈바꿈시켰고, 이후 바르셀로나 감독직을 수행하기 위해 잠시 떠났다.
2023년 대표팀에 복귀한 뒤에는 유로 2024에서 준결승 진출을 이끌었다. 그러나 결승 문턱에서 잉글랜드에 1-2로 패했고, 계약 마지막 대회였던 이번 북중미 월드컵에서는 32강 탈락이라는 기대 이하의 성적을 남기며 두 번째 임기를 마감하게 됐다.
월드컵은 감독들에게 냉혹한 무대다. 이번 대회에서도 성적 부진을 이유로 여러 사령탑이 자리를 비웠다. 한국의 홍명보, 체코의 블라디미르 코우세크, 튀니지의 사브리 라무시, 스코틀랜드의 스티브 클라크에 이어 쿠만 감독까지 줄줄이 물러나는 모양새다.
고개 숙인 쿠만 감독, 홍명보 전 감독과 대비되는 책임감…“평생 잊지 않을 것”
관련자료
-
이전
-
다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