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처절하게 독립을 쟁취한 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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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핀란드
오랜 기간 동안 러시아에 식민지로 있었다가 1917년 드디어 자신들만의 나라를 건국한 핀란드
그러나 평화를 원했을 국민들과 달리 운명은 조국을 혼란으로 인도하게 된다.
핀란드 내전(1918.1월~1918.5월)

건국 직후 좌-우간의 대립은 결국 내전이란 비극으로 터지게 되며
좌-우파간 서로를 향한 학살과 강제 수용소를 운영하며 참혹함의 깊이를 더한 끝에
4개월의 기간동안 무려 3만 6천명의 사망자,부상자 1만 5천명의 피해를 보게 되며
신생 독립국 핀란드의 엄청난 상흔을 남기게 된다.
겨울전쟁(1939.11월~1940.03월)

내전이 끝나고 힘들게 전후복구를 하던 핀란드에게
소련의 확장주의적 행보로 구 제정 러시아 제국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하게된다.
독소불가침 조약,스웨덴의 소극적 지원,발트3국의 합병이란 상황 속 핀란드는 고립되었지만 항전을 택했고
만네르하임을 위시로한 엄청난 방어력을 보였지만 결국 정신 차린 소련에게 중과부적으로 패배하게 된다.
이 처절했던 5개월간 전사자 2만 6천명, 부상자 4만 3천명을 기록하게 된 것은 물론
패전의 대가로 핵심영토(노란색)를 포함한 11%의 영토를 뜯기게 된다.
계속전쟁(1941.6월~1944.9월)

복수를 천명하는 핀란드는 나치 독일의 바르바로사 작전이 전개되고,소련군이 자신들을 폭격하자
공동 교전국으로 참전하며 전진하게 된다.
이 기간 핀란드는 6만 3천명의 전사자,15만 8천명의 부상자를 기록하게된다.
히틀러와 나치는 핀란드 보고 계속 추축국 가입을 권유했지만 당시 핀란드는 이걸 거부했고
이는 후일 핀란드를 살릴 신의 한수가 된다.

독일어로:전우애를 발휘하지 않게해줘 참으로 고맙다
->뒤통수 18아~
1944년대 전황은 암울했다,이탈리아는 항복했고 독일도 방어하기에 급급하며 독일본토도 소련군이 나타나
핀란드에게 최악으로 전개되기 시작하게 된다.
마침내 소련군도 바그라티온 작전으로 독일군을 밀어내고 여유가 생기자
핀란드를 공격하며 핀란드군의 피해가 심각할 정도로 누적되기 시작한다.
핀란드 지도부는 물밑으로 소련,연합국과 협상하지만
그러나 당시 핀란드 지도부에겐 심각한 딜레마가 있으니..
바로 무기,식량을 독일에게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었다는 것
그리고 독일도 핀란드의 손절각을 예상해서,확답을 내놓기 전까지 무기-식량 보급을 끊으며
핀란드를 압박하게 된다, 소련군과 처절하게 싸워야했던 핀란드로써
특히 소련군의 공세로 핵심도시 '비푸리'가 함락되며 발등에 불이 떨어지게된다
이대로 가면 승기 잡은 소련이 구태여 협상보단 완전 점령-공산화를 할 것이기에
어느쪽이든 결단이 필요했고, 결국 모든 걸 뒤집어 쓸 희생양이 나오게 된다.

식량하고,무기 보급 받고 싶으면
의회에 가서 정식으로 독일과 죽을때까지 함께하고,소련과 단독 회담을 가지지 않겠다라고 싸인해

"그럴 필요 없고 내가 대통령으로 있는 한, 무슨 일이 있어도 독일편에서 싸울꺼임 ㅇㅇ"
당시 핀란드 대통령인 뤼티가 자신이 대통령으로 있는한 항복은 없을꺼라며 독일에게 백지수표를 준 것.
독일도 이에 감탄하며 판처파우스트와 식량을 대대적으로 주고 이는 직후 발발한 소련군의 대공세를
돈좌시킨 결정적인 역활을 하게된다.
그러나 핀란드는 결코 나치 독일이라는 동앗줄을 계속 잡을 생각이 없었고,여기서 생존형 배신을 때리게 된다.

아 건강이 안좋아서 나 사표 던짐...

그럼 우리의 약조는 어떻게 된거임?

아 그거,뤼티가 개인자격으로 우리 의회 상의도 없이 맺은 거라 무효임 ㅅㄱ

.....?

우리 이제 단독으로 협상할꺼임 ㅅㄱ

ㅋㅋㅋ날먹할려고? 그건 안되지~
휴전 조건으로는 핀란드 주둔 독일군 20만명의 무장해제 후 축출
기한은 딱 2주, 못채우면 뒤진다?

.....
라플란드 전쟁(1944.9월~1945.5월)
처음에는 핀란드군도 통수친게 미안했는지
독일군과 좋게좋게 wwe마냥 서로 짝짝궁했지만
소련군이 이걸 눈치까고 협박하게되자 결국 ufc처럼 서로 총을 들고 싸우고
배신에 빡친 독일군도 라플란드 지역에서 초토화 작전을 걸고 퇴각하게 되며
라플란드 전쟁기 핀란드군은 전사자 1천명, 부상자 3천명을 기록하게 되고
직후 소련과의 협상으로 막대한 배상금과 영토도 추가적으로 뜯기게 되지만
"독립"을 유지하는데 성공하게 된다.
독립한 1918년에서 종전한 1945년까지 핀란드의 인적 손실은
370만명 중 12만 6천명 전사 / 21만명 9천명 부상
3.4%의 인구가 전사 / 6%의 인구가 부상
합계: 약 10%의 인적손실을 기록
특히 전사,부상자의 경우 20~30대 젊은이들에게 집중 된걸 가만하면
당시 핀란드 청년 4명 중 1명은 죽거나 부상당한 것이라 보면된다.
거기에다가 잃은 영토까지 포함하면 더더욱 뼈아프게 느껴지지만
.

중요한 건 그 어떤 대가를 치루더라도 살아남았다는 것이다.
과거 재정러시아 시기 지배 받았던
발트 3국은 공산화, 폴란드도 공산화
대부분의 재정러시아 시기 식민지들이 그리 좋은 꼴을 면치 못해 공산화 당해
소련에게 쪽쪽 빨아먹혔지만
핀란드는 끝끝내 살아남았기에 그런 운명을 피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독종같은 면모에
핀란드의 철천지원수 스탈린도 경의를 표했는데
1943년 처칠,루즈벨트와 회담에서

독립을 위해 그토록 용감히 싸운 민족은 존중 받을 자격이 있다
라면서 리스펙까지 하게 되었다고...
가장 처절하게 독립을 쟁취한 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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